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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기체 시대의 세계화와 지속가능성의 딜레마

by 생각하는잡동 2024. 5. 16.

세계화와 도시화의 유통기한

 

세계화와 도시화는 높은 에너지 사용률, 특히 운송, 통신, 데이터 처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현재 석유에 기반한 운송 연료는 고갈되어 가는 중이며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운송 연료를 액체 연료에서 전기로 바꾸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지만, 위기를 피하기에는 변화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또한, 이미 논의 중인 여러 에너지 전환 절충안과 장벽들로 인해 전환 범위는 제한적일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앞으로 운송에 더 비싼 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곧 전 세계적인 무역이 감소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덜 기계화되고 더 노동 집약적이며 더 지역화된 식품 시스템으로 전환해 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기르게 되고 도시 인구는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세계화되고 고도로 도시화된 사회보다는, 더 지역적으로 조직되고 더 농촌적인 사회가 구성원들의 심리적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작은 집단 안에서 살도록 진화해 왔고, 서로 얼굴을 알 경우 집단이 더 잘 운영됩니다. 자연과 직접 접하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지면 우리는 자연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집단의 크기가 커지고 사회적 권력이 증가하면, 권력의 불평등과 권력의 남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권력의 남용과 불평등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사회 조직의 크기를 작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초유기체의 출현과 그 특성

 

생태주의자들은 1960년대 이래로 "작은 것은 아름답다"고 말해왔지만, 실제 흐름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흘러 초유기체가 번성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거대하고 복잡한 전지구적인 상호연결망을 설계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이것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초유기체는 불현듯 나타나는 현상(an emergent phenomenon)입니다. 즉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들을 완전히 알고 있어도 예측할 수 없는 그런 현상입니다.

 

초유기체의 다양한 하부 시스템들 중 일부는 부분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초유기체 전체는 그 자체에 고유한 더 우선적인 것과 필수적인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유기체는 성장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이든 좋아하며, 확장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방해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수천 개의 비영리 환경 단체들 그리고 심지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조차도 기후변화에 대해 깊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봐왔듯이, 인류 전체는 여전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가시키고 숲을 없애고 기후안정화의 토대를 허무는 모든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은 왜 실패하는 것일까요? 탐욕스러운 석유 기업 경영진을 비난하는 일은 너무나 쉽지만, 이는 계속 경제 성장하고자 하는 우리 자신의 집단적인 집요함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의 핵심에는 권력과 자본 축적을 지향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관들(정치 정당, 정부 기관, 기업 등)과 다양한 수준의 사회 조직들을 좌와 우, 위와 아래로 가로지르며 영향을 미칩니다. 인류 사회가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는 눈을 우리들 각 개인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집단적으로서의 우리는 자원을 더 추출해내고 더 생산하고 더 무역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지도자를 선출합니다.

 

 

초유기체의 미래와 우리의 선택

 

전지구적인 위기와 붕괴로 향하고 있는 지금 현재의 흐름을 바꾸려면 초유기체를 해체하고 그 권력을 박탈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인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유기체를 잘 살려서 성숙하게 키우고, 초유기체 자체의 한계와 자연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언어, 협력, 기술 그리고 초사회성이 발달함에 따라 인류는 초사회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언어, 협력, 기술, 초사회성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낼 수 있을 것인가에 우리의 생존 여부가 달려 있습니다.

 

초유기체는 아직 어린 아이이며, 그 한계를 시험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각 개인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한계를 인식할 수 있고 그 한계 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인간 집단조차도 집단적인 행동이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경우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전지구적인 초유기체가 가진 지능은 아메바 수준입니다. 초유기체는 최대 권력의 원칙을 절대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하고 더 많은 권력을 축적할 것인가 밖에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초유기체는 자연적인 한계와 숨겨진 되먹임 과정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 환경과는 완전히 상충합니다.

 

최적 권력 원칙의 지배를 받는 성숙한 전지구적 초유기체는 지금으로서는 순전히 이론적인 존재입니다. 이런 성숙한 전지구적 초유기체는 아마도 신뢰와 이해를 구축하는 아래로부터의 과정을 통해, 그리고 일찍이 없었던 높은 정부 수준(지방, 지역, 국가, 그리고 지구적인)에서 인류가 스스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공식적인 합의와 협력기관을 만들어냄으로써 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무역이 감소하는 상황일 경우, 인류 벌집의 생존 뿐만 아니라 도덕적 번영(폭력과 불평등 감소라는 측면에서)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전지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유지될 수 있을지 우리는 그저 추측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일을 해낼 수 없다면, 초유기체는 단명할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세계적인 경제와 전지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국제적인 협력 없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아래로부터 이루어지는 노력을 통해 전지구적인 생태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런 노력은 이미 전세계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싹트고 있지만, 국제 기후 협약 보다는 주목을 훨씬 덜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후변화는 전지구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전지구적인 문제라고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전지구적인 통합이 서서히 혹은 조각조각 붕괴해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가 더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오랫동안 지녀온 몇몇 가치들과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좋든 싫든, 앞으로 우리는 덜 세계주의적이고 더 부족주의적인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